우리나라와 일본의 야구인프라를 비교하는 것은 초등학생의 덧샘 실력과 고등학생의 미적분 실력을 비교하는 것만큼 무모합니다.

4,000여개의 고등학교 야구팀, 12개의 프로팀, 6개의 돔구장.. 동네 여기저기에 조성된 야구 공원 등등.. 일본에서 야구는 전국민의 스포츠이며 선수들은 연예인 못지 않은 대접과 환대를 받는 직업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나 프로팀에 가지 못한 선수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처럼 방황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사회인야구팀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야구를 계속할 수 있고.. 잘하면 프로팀으로 이적할 수도 있으니까요.

일본야구의 심장부 도쿄돔

그래서 일본은 선수자원이 넘쳐납니다. 국가대표팀을 3개팀 정도 만들 수 있다고 하죠.

반면에 우리나라 야구환경은 척박하다 못해 황무지나 다름없습니다.

인구수에 비해 프로구단의 수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아직도 한국전쟁 이후 건설된.. 마이너리그보다 못한 야구장을 사용하는 프로구단이 많습니다.

프로구단이 이 정도인데 아마야구의 상황이 좋을리 없죠.
 
학교내에 야구를 할 수 있는 변변한 야구장이 없어 일반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을 공유하다보니.. 기물 파손 및 안전사고로 인해 학교장이나 학부모들과의 마찰도 많습니다. 감독, 코치는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이고, 그들의 월급은 야구부원 학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충당해야 합니다.

매년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지명을 기다리는 야구선수는 대략 800여명 규모인데.. 그중 50여명만이 프로구단에 입단합니다.

지명을 받지 못한 나머지 선수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돼야 합니다.

이런 인프라의 격차때문에 야구에서 한국은 항상 일본에 이어 아시아 두번째라는 인식이 강했으며.. 1회 WBC 4강과 올림픽 금메달을 '이변'으로 취급받기도 했죠.

14-2 콜드패를 당했을 때 일본언론들은 마치 한일야구관계가 '일본>한국' 이었던 원래 제자리로 돌아간 것 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하지만 해외 지도자 및 해외파 선수, 용병 등이 한국 야구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면서 인프라의 격차로 인한 수준차이는 자연스럽게 많이 좁혀진듯 하구요.. 오히려 한일양국 야구 스타일의 차이를 뚜렷하게 부각시켰습니다.

우리 아마야구 선수들에게 야구는 취미가 아닌 생존의 문제이며, 장래 밥벌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얇은 선수층에서도 부단한 노력과 많은 훈련량을 바탕으로 특출난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는 선수들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일본 선수들에 비해 골격이 크고 근력이 강해 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경우에는 오히려 일본 선수들을 압도합니다.

일본 야구가 섬세하고 분석적이라면,우리의 야구는 투지과 힘의 야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거기에 정신력이 더해져 스타일의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하여.. 최근들어 양국의 베스트와 베스트가 맞붙는 경기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양상을 띄는 것 같습니다.

기준에 따라서는 섬세하고 분석적이며 작전수행능력이 뛰어난 일본야구가 수준이 높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우리와 스타일이 다른 야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스타일의 야구가 서로 충돌할 때 우열을 가리는 기준과 변수는 누가 더 대담하고 누가 더 냉정하고 누가 더 집중하고 투지를 불태우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야구를 재미나 취미가 아닌 미래의 밥벌이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것은 어린 선수들에게 가혹하고 차가운 생존의 짐을 너무 일찍 짊어주는 것이며.. 그 자체만으로도 서글픈 일입니다.

앞으로는 일본을 꺾은 한국 야구의 원동력이 "정신력"이나 "투지"로만 평가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야구 인프라의 확충과 유소년야구에 대한 지원, 관심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pr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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