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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7 '부상이 안타까운 선수 1위, 이대진'을 보고..

어제 아주 오랜만에 MBC의 "야구읽어주는 남자"라는 야구프로그램을 봤다. 요즘 야구의 인기가 높다보니 단순히 경기결과를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매거진 형식으로 진행되는 야구프로그램이 많이 생겼고, '야구읽어주는 남자'역시 매거진 성격의 방송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방송 주기가 월단위라 일정등록을 해놔야 챙겨볼 수 있다.

프로그램 말미쯤, 부상이 안타까운 선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는데 박철순, 염종석, 김건우 등 많은 스타들이 거론되었고, 1위는 기아타이거즈의 이대진선수였다.

해태-기아타이거즈의 팬이라면 단연 선동열을 이을 차세대 호랑이 에이스로 이대진선수를 꼽지 않은 팬이 없었을 것이다.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해태타이거즈 시절의 이대진선수



내가 이대진선수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몇차례의 짧은 만남과 부상이라는 동질감때문이다.

1990년 중반 해태팬클럽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이대진 선수에게 팬클럽회원들의 축전을 전달해 주었었는데 그때 축전의 디지털 편집을 내가 직접 하기도 하였고.. 1997년 해태타이거즈라는 이름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때 마스코트 호돌이와 선수로 그라운드에서 악수를 나누기도 하였다.

나는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호랑이 인형을 쓰고 치어리더 옆에서 흥을 돋우던 호돌이를 했었다. 그때 당시에는 마스코트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달랐기에 아르바이트는 아니었고, 한국시리즈에 맞춘 이벤트성 캐릭터였다.

우승을 앞둔 9회말 2아웃 해태타이거즈의 마지막 수비때 호랑이 탈을 쓰고 덕아웃으로 내려 갔었고, 우승이 확정된 직후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갔을 때, 나도 덩달아 뛰쳐나가 뒤엉켜 있으면서도 이대진선수를 향해 내가 먼저 악수를 청했던 기억이 있다.
 
(호랑이 탈을 쓴 마스코드 인형이 선수에게 악수요청을 하고 악수를 하는 장면을 떠오르니 조금 웃긴 것 같다.)

이대진선수는 팬의 입장에서 응원하는 선수이기도 했지만, 그때 사회인야구를 막 시작했던 나에게는 닮고 싶은 선수이기도 했다.

150km/h에 육박하는 돌덩이같은 묵직한 직구로 타자를 윽박지른 후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브를 이용해 삼진으로 돌려 세우는 모습은 내가 바라던 우완 정통파 투수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 역시 1996년도에 처음 사회인야구를 시작한 이후 10년 가까이 투수로만 활동했었다. 어깨가 싱싱하던 시절엔 직구 구속이 120km/h정도 나오기도 하였고 하루에 두 게임을 연달아 완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05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어깨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한 3개월정도 공을 던지지 않고 쉰 뒤에 이를 악물고 던져야 105km/h를 넘을까 말까한 공을 던질 수 있다.

사회인야구는 프로가 아니기에 투수를 못하면 다른 포지션을 하면 된다. 하지만 투수로서의 로망은 늘 여전하다. 투수가 주는 매력은 다른 포지션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그라운드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으며, 투수의 와인드업으로부터 경기가 시작되고, 타자와 1:1로 맞붙어 싸운다. 양팀 9명의 선수가 대결하는게 야구이지만 타자를 상대로 직접적인 대결을 하는 선수는 오로지 투수뿐이다.

투수는 타자와 물리적인 접촉 없이 대결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는 공에는 그 이상의 정신력과 집중력을 실어 던져야 한다. 상대방과의 물리적인 접촉을 통해 내가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상대방과 대결해야하는 것이 야구를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는 이유인 것 같다.

타자와의 대결 결과가 어떻든간에 타자와 맞서는 과정 자체가 큰 만족이고 투수라는 포지션이 주는 매력이다.
 
하지만 던지고 싶은대로 던져지지 않을 때 받게되는 상실감과 좌절감은 투수의 매력만큼이나 어마하다.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긴 세월을 송두리채 날려버릴 수도 있는 심각한 부상이라면 투수에겐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대진선수는 이마저도 자신과의 싸움이라 여기고 받아들여 이겨냈고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이대진선수의 꿈은 시속 145km이상의 공을 던져보는 것이라고 한다. 요즘 왠만한 투수들이 맘먹고 던지면 찍을 수 있는 구속 145km/h..

불같은 강속구로 전인미답의 10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했던 이대진선수였지만 이제는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만큼이나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소원이 되어 버렸다.

우완정통파의 교본


마치 번개처럼 달려 연일 100m 세계신기록을 바꾸고 있는 우사인 볼트가 온전히 전력을 다해 100m를 뛰어보는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프로야구선수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사회인야구를 통해 투수의 매력에 빠져봤던 나 역시, 지금은 어깨 통증으로 온전하게 전력투구를 할 수 없는 입장이 되다보니, 이대진선수의 소원이 너무나도 간절하게 다가온다.

200승투수였어야 할 100승 투수 이대진 - MBC '야구읽어주는 남자' 中



부상 후 타자전향 시도, 여러 차례의 수술과 기나긴 시간의 재활 등.. 힘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작년에 통산 100승을 기록한 이대진선수, 비록 지금은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것이 소원이 돼버린 130km/h대 평범한 직구를 던지는 기교파 투수가 되었지만, 이대진선수를 기억하는 많은 팬들의 가슴엔 영원히 "Ace of Ace"로 남아 있을 것이다.

Posted by pr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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