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결승전 패배, 어느 경기의 패배소식보다도 분하고 억울한 느낌

일본과의 실력차이를 떠나 선수층의 차이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져 서러웠던 경기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최고의 기량을 가진 이승엽은 소속팀에서의 성적과 입지때문에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박찬호도 마찬가지 이유로 애석하게 참석을 못하고.. 마치 시댁 일때문에 친정일 못도와주는 딸 같은 심정...

어렵게 참가한 추신수는 사사건건 간섭을 당하고...

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거머쥐고 국제대회에서의 성적도 일본에 절대 밀리지 않지만, 열악한 야구 인프라와 얇은 선수층.. 좁은 야구 저변 등으로 그동안 우리 야구대표팀의 우승과 승리는 기적이나 이변 취급을 당했다.

잘싸워 준 한국 야구 대표팀



이번 WBC대회전 각 팀들을 분석한 외신 기사에서도 우리나라는 네덜란드와 함께 '다크호스'로 분류되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대표팀이 승리를 거둘때마다 외신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고 찬사가 이어졌지만, 그 반응의 대부분은 '기적', '이변', '돌풍'으로 표현되기 일수였다.

우리가 이긴 경기에 대한 평가는 '실력'과 '기량'보다는 '정신력'과 '투지'라는 말이 더 많았다.

말그대로 정신력과 투지가 발휘되어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 정신력과 투지가 없었으면 알 수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

WBC에서 일본이 대회 2연패를 하게 되어.. 2008년 올림픽에서 우리 금메달에 대한 평가나 기억은 그저 작은 '이변'이나 '돌풍' 정도로 평가받을 것이 가장 짜증난다.

예전부터 우리는 쭉 일본야구에 대한 도전자이며 세계야구에서의 이방인으로 기억될 것 같아 서럽다. 그래서 이번 결승전 패배가 어느 때보다 더 뼈아프고 가슴아프다.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이번 WBC까지 우승하여 진정 우리의 승리가 '이변'이나 '돌풍'이 아닌 진정한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 같아 매우 비통하다.

국내 최고의 프로스포츠인 프로야구는 10년전보다는 지금이..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나은 모습을 보이며 발전해 왔다.
 
경기침체로 관중수가 줄기도 했지만.. IMF시절 태평양을 넘어 날라오는 박찬호선수의 활약상에 새벽잠을 설친 피곤함도 잊었었고.. 작년엔 올림픽 금메달과 함께 500만 관중 시대를 여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인프라나 저변은 어떤가.. 유소년야구팀, 고교야구팀의 실정은 또 어떤가.

어느 유소년 야구팀의 열악한 훈련 환경 (작년 여름 직접 찍었음)



이런 환경에서 미래의 메이저리거들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마저도 인원이 없어 해체되는 팀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시카고컵스에 입단한 충암고 이학주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 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선수인데.. 이학주 선수가 처음 야구를 시작하고 기본기를 익혔던 초등학교 야구부는 2005년도에 이미 해체되고 없다. 1998년 야구부가 창단됐으니 야구부가 창단된지 10년도 안돼 해체된 샘이다.

몇 십년 동안 야구부를 운영한 역사 깊은 학교에서도 메이져리거를 배출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인데.. 불과 8년만에 해체된 초등학교 야구부에서 메이저리거 구단에 스카웃 될 정도로 실력을 갖춘 선수가 배출됐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다.

바꿔 말하면, 여건과 시설, 관심만 갖춰진다면 충분히 실력있고 가능성 높은 선수 자원들을 길러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나라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룬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해방 직후 건설된 야구장에서 아직도 프로야구가 열리고 있다.

이번 WBC를 통해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김태균이 뛰고 있는 야구장이라고 한다면 외신기자들이 믿을까?



언제까지 우리 선수들이 이룬 값진 승리와 우승의 감격을 단지 '기적'과 '이변'으로 취급받게 해야하나.. '실력'과 '기량'이 아닌 '정신력'과 '투지'로만 평가받아야 하는 한국 야구의 현주소가 서럽고 서글프다.

그리고 그걸 방치하면서 원론만 내세우며 누구하나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는 이 나라와 선거철 표몰이를 위해 감언이설을 남발하는 지자체장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지방구장의 현대화와 야구인프라의 확충, 야구저변의 확대에 대한 지적과 대책강구는 비단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달라진게 없다. 올림픽 금메달과 WBC에서의 준우승으로 어느 때보다 야구에 대한 관심과 국민 정서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위상이 높아진 이때, 야구인들과 팬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국가와 여러 지자체들은 제발 깨닫길 바란다.

Posted by pr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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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일본의 야구인프라를 비교하는 것은 초등학생의 덧샘 실력과 고등학생의 미적분 실력을 비교하는 것만큼 무모합니다.

4,000여개의 고등학교 야구팀, 12개의 프로팀, 6개의 돔구장.. 동네 여기저기에 조성된 야구 공원 등등.. 일본에서 야구는 전국민의 스포츠이며 선수들은 연예인 못지 않은 대접과 환대를 받는 직업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나 프로팀에 가지 못한 선수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처럼 방황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사회인야구팀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야구를 계속할 수 있고.. 잘하면 프로팀으로 이적할 수도 있으니까요.

일본야구의 심장부 도쿄돔

그래서 일본은 선수자원이 넘쳐납니다. 국가대표팀을 3개팀 정도 만들 수 있다고 하죠.

반면에 우리나라 야구환경은 척박하다 못해 황무지나 다름없습니다.

인구수에 비해 프로구단의 수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아직도 한국전쟁 이후 건설된.. 마이너리그보다 못한 야구장을 사용하는 프로구단이 많습니다.

프로구단이 이 정도인데 아마야구의 상황이 좋을리 없죠.
 
학교내에 야구를 할 수 있는 변변한 야구장이 없어 일반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을 공유하다보니.. 기물 파손 및 안전사고로 인해 학교장이나 학부모들과의 마찰도 많습니다. 감독, 코치는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이고, 그들의 월급은 야구부원 학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충당해야 합니다.

매년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지명을 기다리는 야구선수는 대략 800여명 규모인데.. 그중 50여명만이 프로구단에 입단합니다.

지명을 받지 못한 나머지 선수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돼야 합니다.

이런 인프라의 격차때문에 야구에서 한국은 항상 일본에 이어 아시아 두번째라는 인식이 강했으며.. 1회 WBC 4강과 올림픽 금메달을 '이변'으로 취급받기도 했죠.

14-2 콜드패를 당했을 때 일본언론들은 마치 한일야구관계가 '일본>한국' 이었던 원래 제자리로 돌아간 것 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하지만 해외 지도자 및 해외파 선수, 용병 등이 한국 야구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면서 인프라의 격차로 인한 수준차이는 자연스럽게 많이 좁혀진듯 하구요.. 오히려 한일양국 야구 스타일의 차이를 뚜렷하게 부각시켰습니다.

우리 아마야구 선수들에게 야구는 취미가 아닌 생존의 문제이며, 장래 밥벌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얇은 선수층에서도 부단한 노력과 많은 훈련량을 바탕으로 특출난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는 선수들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일본 선수들에 비해 골격이 크고 근력이 강해 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경우에는 오히려 일본 선수들을 압도합니다.

일본 야구가 섬세하고 분석적이라면,우리의 야구는 투지과 힘의 야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거기에 정신력이 더해져 스타일의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하여.. 최근들어 양국의 베스트와 베스트가 맞붙는 경기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양상을 띄는 것 같습니다.

기준에 따라서는 섬세하고 분석적이며 작전수행능력이 뛰어난 일본야구가 수준이 높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우리와 스타일이 다른 야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스타일의 야구가 서로 충돌할 때 우열을 가리는 기준과 변수는 누가 더 대담하고 누가 더 냉정하고 누가 더 집중하고 투지를 불태우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야구를 재미나 취미가 아닌 미래의 밥벌이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것은 어린 선수들에게 가혹하고 차가운 생존의 짐을 너무 일찍 짊어주는 것이며.. 그 자체만으로도 서글픈 일입니다.

앞으로는 일본을 꺾은 한국 야구의 원동력이 "정신력"이나 "투지"로만 평가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야구 인프라의 확충과 유소년야구에 대한 지원, 관심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pr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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