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에서 재기를 꿈꾸다 조용히 은퇴한 정민태선수가 기아의 어린 투수들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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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쓴소리는 비단 기아 투수들을 향해서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칭스텝.. 더 넓게는 프런트까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팬이 선수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야구장뿐이니.. 야구장이 아닌 곳에서의 생활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정민태가 하는 말을 전부 무시하지는 못하겠다.

선수생활 은퇴 후 코치 자리를 알아 보고 있는 입장에서 그의 발언은 자기무덤을 판 꼴일 수도 있다.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선후배 위계질서가 우선인 우리나라 운동선수 집단에서 "따끔한 충고"보다는 "건방진 발언"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정말 건방진 것인지.. 아니면 "어디 감히.."라는 생각에 그렇게 폄하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정민태가 현실을 똑바로 보고 용기있는 발언을 했거나.. 눈치가 없거나.. 둘 중에 하나일테지만.. 작년과 올시즌 기아야구의 한심하고 처참한 모습을 지켜본 나로서는 전자쪽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매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각종 야구전문가들은 각양각색의 분석과 근거를 바탕으로 그 해 시즌의 판도를 예상한다.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각팀의 전력과 예상 성적을 분석한 글이 올라오게 마련이다.

기아는 그때마다 늘 4강후보로 거론된다. 그놈의 V9라는 타이틀과 후광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명가재건(名家再建)"

올시즌 시작전 이런 설레발은 그 어느 시즌보다 특히 심했다. 나 역시 설레발을 감추지 못했다.

서재응, 최희섭이라는 연고지 출신 메이저리거가 가세하여.. 전력상승과 더불어 흥행까지 잡을 수 있을 줄 알았고.. 용병인 리마와 발데스는 메이저리거 4인방의 이슈거리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심하게 말해 시즌 전 분위기는 4강을 넘어 이미 우승한 분위기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을 정도...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어땠나..

서재응.. 부상만 없었더라면..
최희섭만 제 역할 해줬더라면..
발데스가 제 역할 해줬더라면..
리마가 좀 더 잘해줬더라면..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세상에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써서 우승못할 팀이 어디있나..
지금 기아타이거즈의 전력을 보면 향후 3년은 하위권 예약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투타에서 치고 올라오는 선수나.. 유망주가 보이질 않는다.

윤석민, 이범석 등 영건이 빵빵하다고?
글쎄.. 이 정도 영건이나.. 에이스는 다른 팀들도 거의 매년 배출되거나.. 이미 보유하고 있지 않나..?
임준혁, 양현종, 문현정, 유동훈?? 이들이 리그 상위권 중간계투진이던가..

그렇다고 타선에 짜임새는 어떤가..
굳이 박석민, 최형우, 채태인 등.. 세대교체에 성공한 삼성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몇 년간 세대교체가 정체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지완, 김선빈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가능성은 그저 확률과 예상일 뿐.. 신뢰할만한 수준은 못되는 것이 슬프지만 현실이다.

엘지의 '신바람야구'만큼이나 식상해진 그놈의 V10, V10..

그렇게 외쳐대는 V10의 10이라는 숫자보다.. 한국시리즈에 나가보지 못한 햇수가 벌써 11년째라는 사실은 알고 있나..

1997년 해태타이거즈 이름으로 우승한 이후... 11년 동안 단 한번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팀은 기아타이거즈가 유일하다.

11년동안이나 정체되어 있는 V10좀 마케팅에 그만 사용하자.. 시카고컵스 "염소의 저주"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이건 거의 저주에 가까운 아홉수다.

매년 V10을 외치는 것도 이제는 좀 창피해진다.

언제까지 과거의 영광만 떠올리고 있을텐가..
언제까지 지난 날의 타성에 젖어 헤어나오질 못할텐가..

20년 넘게 타이거즈 야구를 응원하고 있는 팬이지만..
솔직히 요즘 드는 심정은 구단과 팬들의 설레발이 타이거즈 야구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수들에게서 투지와 열정을 찾기란 2MB에게서 개념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
심판의 어이없는 스트라익 판정에 억울하고 분해하며 항의하는 타자도 없고..
상대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공을 뿌리는 투수도 없다.

(굳이 찾자면.. 이용규와 이범석 정도)

선수들에겐 코치스텝의 기술적인 면의 지도와 더불어 동기부여와 목표설정, 심리적 안정감 등도 함께 중요한데.. 기아는 그런 것이 부족해보인다.

2009시즌 캐치프레이즈에도 어김없이 "V10"이라는 문구는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기아타이거즈에게 "V10"은 영광스런 타이틀이 아닌 11년동안이나 해결하지 못한 묵은 숙제로 선수와 팬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이뤄야 할 목표가 아닌 풀어야 할 과제가 된 것이다. 목표는 꾸준히 정진하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겠지만.. 과제는 당장 해결해야하는 짐같은 뉘앙스다.

"V10"의 굴레는 팬들에겐 과대포장된 기대감을 주고, 코칭스텝과 선수들에겐 영광스런 타이틀이 아닌 풀어야 할 숙제로 인식 될 뿐이다. 이루지 못한 햇수가 더해 갈수록 자괴감만 커지고 있다.

지금의 기아 선수들에게 선배들의 영광과 감동을.. 자랑거리와 추억으로 기억하게 하지 못하고.. 짐으로 짊어지게 해버린 건 아닐까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고개들고 다시 뛰자 호랑이들



Posted by pr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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