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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14 정글의 법칙 그리고 방송에 리얼은 없다고 느꼈던 계기

얼마 전 정글의 법칙이 조작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요즘에야 대부분의 방송 프로그램에 대본이 존재한다는 걸 알지만 나도 한때 방송을 있는 그대로 믿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중 방송에 리얼은 없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던 계기가 있었는데, 대학생 시절에 K본부에서 생방송 보조 아르바이트를 잠시 하면서였다. (1996년~97년)

 

당시 내가 주로 했던 업무는 방송 내용과 관련해서 PC통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로 접수된 시청자 의견을 취합하고 출력하는 일이었다.

 

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이런 알바를 자주 했었는데, 어느 날 토론의 주제가 "가출청소년" 문제였다. 여러 패널들과 실제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과 그런 가출청소년을 둔 부모가 출연하여 패널들의 질문을 받고 답하는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일반인 출연자들은 개인 신상의 보호를 위해 그림자만 나오는 스크린 뒤에서 음성이 변조되어 질문에 답을 하였다.


패널들은 언제 가출했는지, 가출하고 뭘했는지, 가정환경은 어땠는지, 평소 가족간에 대화는 많았는지 등등을 질문했다. 다들 구구절절한 사연도 많았고, 어느 면에서는 가출할 수 밖에 없었던 가출청소년들의 대답에 수긍도 갔다. 가출한 아들에게 돌아올 것을 애타게 호소하는 어느 부모님의 말씀에 저절도 숙연해지게도 했다.

 

그런데, 생방송이 끝난 후 알고 보니, 그 가출청소년과 부모들은 일반인이 아닌 섭외된 연기자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패널들과 주고받은 대화와 구구절절한 사연들도 작가가 써 준 대본이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실상을 증언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섭외된 연기자였고 그들의 사연이 대본이었다니 당시 어린 나이에 꽤 충격이었다. 녹화방송도 아니고, 가벼운 주제도 아닌 토론 프로그램도 이정도인데 하물며 다른 방송은 어떨지 쉽게 예상이 되었다.


그 후로 다른 프로그램 녹화 현장도 스텝 입장에서 볼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촬영 현장과 실제 방송되는 내용에는  작거나 크거나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그 후로 방송을 보면서 실제로 저럴 것이다 믿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요즘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로 왠만한 정보는 검색을 통해 찾아볼 수 있고,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된다. 정글의 법칙의 조작 논란과 증거자료들 역시 박보영 소속사 사장의 인터뷰를 빌미로 시청자들의 검색과 SNS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그동안 정글의 법칙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다른 예능들과 달리 인위적으로 연출된 상황에서 보여지는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시청자들로 하여금 "진짜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여 출연자들이 겪는 상황이 실제 나에게 닥친 상황인것처럼 몰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생에서의 긴박한 상황이 모두 설정이었다는 것이 탈로나자 긴장과 몰입의 끈은 풀어졌고 허무함만이 남게 되었고, 그 허무함은 오래지 않아 속았다는 배신감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내용 전달의 극적인 효과와 기획의도를 극대화 시키는 연출은 설령 조금 과하더라도 쉽게 논란의 대상은 안될 것이다.하지만 이번 정글의 법칙 조작 논란은 시청자들에게 너무나도 "리얼"만을 강조하고, 그것을 프로그램의 존재이유로 포장됐던 것이 정글의 법칙에 대한 반감과 조롱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Posted by pr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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